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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행|좋은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세계 일찬 독서기행, 책 읽는 캠퍼스가 함께 합니다. 책 읽는 캠퍼스와 함께 했던 독서기행의 기억과 추억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여러분의 참여는 책 읽는 캠퍼스를 웃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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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후기|안동으로 떠나는 독서기행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기행... 알고는 있었지만 참여해보진 않았었다. 하지만 졸업하기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에 신청시간인 5시가 땡하자마자 바로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니 다행히 '독서기행에 함께 하시게 된것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그리곤 5월 4일이 다가왔다. 하지만 7시 10분까지 학교를 가야 된다는 걱정과 처음 독서기행을 떠난다는 설레임이 나를 잠못이루게 만들었다. 계속 이불속에서 뒤척이다가 새벽에 시간이 되서 준비하고 학교를 가보니 독서기행을 가는 학우분들이 옹기종이 모여있었다. 학우분들이 다 도착하자 7시 30분쯤에 학교에서 출발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여왕과 미국의 두 부시대통령이 찾은 안동.. 너무너무 기대되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간단한 샌드위치와 음료를 받아 먹고, 백이든선생님과 이원규선생님께서 독서기행이란 프로그램의 소개와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책 10권의 상품들과 안동에 대한 퀴즈 10문제를 내셨다. 학우분들은 퀴즈를 맞추고 책을 받기위하여 열심히(?) 문제를 맞췄다. 나도 맞추려고 했지만 점점 난이도가 어려워져서 못맞추게 되었다. 10시 30분쯤되자 우리들의 첫번째 목적지인 병산서원에 도착하였다.

 

 

 

 

< 병산서원>

 

 

 

사적 제 260호인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으로 고려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다. 1572년에 서해 류성룡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겼다고 한다.(독서기행안내문참조)

 

 

류성룡은 선조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뒤 1614년에 선생을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서원이 되었으며, 철종 14년(1863)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때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존속된 47개의 서원과 사당중 하나이다. 병산 서원은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있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점에서 '한국서원 건축의 백미'로 이름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독서기행을 온 학우분들과 선생님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 바라본 병산과 낙동강은 너무 아름다웠다. 비올거라고 걱정하며 우산을 가져온것이 무색하리만큼 날씨도 좋았다. 오히려 너무 더웠다.

본래 만대루에 들어갈수 있게 되어있지만, 우리가 갔었을때는 입장을 제한하고 있었다. 만대루에서 본 경치는 최고라던데 정말 아쉬웠다.

 

 

병산서원앞에 있는 모래사장에도 꼭 가보라고 도서관선생님들이 권하셨다. 안가볼수 없지! 하고 얼른 가보았다.




 

카메라가 내눈으로 보는 영상을 담지 못하는게 너무 아쉬울 따름이였다. 내가 아는 지인은 이곳에 겨울에 와봤다고 하던데 눈이 덮힌 병산서원도 너무나 멋졌다고 겨울에 와도 정말 최고라고 극찬을 하셨다. 파릇파릇한 풀내음 가득하고, 꽃이 핀 나무가 있는 지금의 병산서원과 다른 모래사장이 눈으로 뒤덮힌 조용하고 고요한 병산서원이 상상 되었다.

 



카메라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찍어본 사진...! 실제로는 더 이뻐요~!!


자유시간을 가진후 하회마을로 이동하였다. 사실 어렸을적에 안동 하회마을을 와본적이 있지만 너무 어렸을적이라 잘기억은 안나지만 멋있는 마을이었던것만 기억난다. 

 

 

 

<안동하회마을>

 

 

안동하회 마을 입구에 있는 안동장터에서 점심을 먼저 먹기로 했다. 메뉴는 안동 찜닭과 간고등어! 사실 찜닭은 안동이 유명한지 알고 있었지만 고등어는 유명한지 처음 알았다. 고등어 크기도 엄청나게 컸다. 찜닭맛은 솔직히 그냥 학교앞 찜닭마을이랑 같다.ㅎㅎ전주에 가서 전주비빔밥이 우리지역 맛있는 비빔밥과 같듯이...^^; 밥을 먹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입구에서 안동하회마을 까지 순회하는 버스를 타면 하회마을로 들어 갈수 있다. 자유시간이 2~3시간 정도였는데 하회별신굿탈춤을 보려면 하회마을 입구로 다시 나와야 하였다. 그래서 하회마을을 다둘러보던지 , 하회마을을 구경하다가 탈춤을 보러 입구쪽으로 나오던지 선택권이 주어졌는데 우리는 하회마을에 1시간정도 있다가 탈춤을 보러 나왔다.

 


 

탈을 직접 만들어 볼수 있는 체험도 마련되어있다. 가족단위로 오는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인것 같다.



 

새끼 꼬시고 계신 할아버지. 이위에다가 녹차를 말린다고 하셨다.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이 나를 더 기분좋게 해주었다.

 

이골목사이로 들어가면 삼신당 신목이 나온다.




수령이 600여 년된 느티나무로 마을에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목이라고 한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이곳에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 나무 밑으로 오니 정말 서늘하고 시원하여 계속 여기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무에 매달린 소원종이들이 빼곡하게 달려있다. 사람과 나무크기를 비교해보면 알듯이 엄청나게 큰 느티나무이다. 나도 질수없지 하면서 펜과 종이를 들어 소원을 적었다. 하나만 적으려 했지만  나무의 좋은기를 받고픈 마음에 여러개 적었다.

 




보물 제 414호인 충효당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으로, 평생을 청백하게 지낸 선생이 삼간초옥에서 별세한 후 그의 문하생과 지역 사림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졸재 류원지를 도와 건립하였다고 한다. 충효당이라는 당호는 선생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 는 말을 강조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회마을 한켠에 마련된 민속놀이마당. 그네와 널뛰기 투호 등 민속놀이를 즐길수 있게 되어있다. 어린이날 전날이라 그런지 가족단위로 많이 와서 안동하회마을에 많이 왔다.


그리고 옆쪽에는 전통놀이 무료로 체험을 할수 있는 곳이있다.

 

 

 

민속놀이마당 바로 옆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 473호 만송정 솔숲.

이 솔숲은 겸암 류운룡 선생이 젊은 시절에 조성한 것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서쪽의 지기가 약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심은 비보림이라고 한다. 또한 부용대와 낙동강 백사장과 더불어 하회마을 선비들의 풍류놀이 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에 오면 어릴적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서 솔나무 숲에서 보물찾기하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솔숲밑에는 모래사장과 아주멋진 암벽들이 있다. 이곳엔 나룻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갈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시간상 배를 타보진 못했지만 다음번에 오면 타봐도 좋을것 같다. 솔숲에서 사진 많이 못찍은게 아쉽다. 탈놀이 시간이 다되어 만송정 솔숲을 마지막으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보러 나왔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있다. 별신굿이란 3·5년 혹은 10년마다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서낭)님에게 마을의 평화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굿을 말한다.

친구와 함께 도착하니 이미 시작한 탈놀이. 실제로는 처음 보는 중요무형문화재 하회별신굿탈놀이였다. 흥겨운 풍물소리에 절로 리듬을 타게 된다. 탈놀이 내용은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선비마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히 몇개만 설명하자면,

 

 

 

 

주지마당 :

암수 한 쌍의 주지가 삼베 포대기를 뒤집어 쓰고 등장하여 서로 마주보며 춤을 추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주지는 신성하고 무서운 상상(想像)의 동물로써 암 수 주지가 서로 어울려 격렬한 춤을 추는 것은 잡귀와 사악한 것을 쫒아내어 탈판을 정화하기 위함이며, 암수의 싸움에서 암컷이 이기는 것은 다산과 풍농(豊農)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정마당 :

백정이 도끼와 칼을 넣은 오장치를 들고 등장하여 춤을 춘다.이 때 어슬렁거리며 등장한 소를 보고 본능적으로 소를 때려잡는다.

소의 배를 갈라 염통과 소불알을 떼어 구경꾼들에게 염통과 우랑(牛囊-소의 불알)을 사라고 희롱한다. 백정은 몽두리 춤의 거침없는 몸짓과 소를 단숨에 때려잡는 행위를 통하여 신분차별에서 오는 제도적 모순에 저항하고, "공자도 자식을 놓고 살았다"고 하면서 " 자식을 볼려면 양기가 있어야 되고 양기가 쎌려면 바로 이 소불알을 먹어야 한다"고 외치는 행동은 겉으로는 성을 금기시하며 은밀하게 성을 즐기는 유교체제의 도덕률과 양반들의 도덕적 위선을 비판한다

 

 

파계승마당:

부네가 등장하여 고운 자태를 뽐내며 매혹적인 오금춤을 춘다. 흥에 겨워 춤을 추던 부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주위를 살핀 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치마를 살짝들고 소변을 본다. 이 때 우연히 길을 지나가던 스님이 이 광경을 보고 여인의 오줌냄새를 맡고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종교적인 계율의 굴레를 떨치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 세속적인 삶을 즐기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각 마당별 내용설명출처 :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저 설명을 알고 탈놀이를 봤더라면 더 즐길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

 

 

 

중간에 각시탈이 나와 돈을 받는다. 근데 난 왜이렇게 이모습이 귀여운건지...^^

 

 

 

즐거운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보다가 모이는 시간이 되어 버스로 향했다. 더운 날씨덕택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받아 물고는 우리들의 다음목적지이자 최종목적지인 권정생선생님의 생가로 향했다.

 

 

<권정생 선생님 생가>

 

 

 

 

우리들의 세번째 목적지이자 최종목적지인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에 도착했다.  권정생 선생님의 대표작으로는 강아지똥, 하느님의 눈물, 몽실언니, 점득이네 , 사과나무 밭 달님 등이 있다. 여기 오기전에 선생님께서는 이제 곧 권정생 생가에 도착할텐데 정말 뭐가 없다. 라는 말을 하셨다. 도착하자 정말 조그마한 집한채와 옆에 있는 화장실이 다였다. 이 집은 무려 128만원 짜리 집이란다.

 

백이든 선생님께서 물었다. "1년에 1억씩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이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러대답이 나왔다. 거의 돈을 쓴다는 식의 대답이였다. 권정생 선생님께서는 1년에 1억씩 저작료를 받으시면서도 이 흙집에서 생활했다.  전기도 안들어 오는 집에서 권정생선생님은 생활 하셨다. 호롱불빛으로 글을 쓰시고 생활하셨다고 한다. 오히려 후에 전기를 설치하자 익숙치 않아서 잘 생활할수 있을지 걱정하시던 분이셨다. 검소하고 욕심없이 살아오신 분.. 병마와 싸우면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대단한 분이라고 느꼈다.

 

꿈을 쫓아 가는 불안정한삶과 현실에 순응하는 불안정한삶.. 물질만능주의에 길들여진 삶..권정생선생님의 생가를 보면서 선생님의 삶과 내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흔히 우리는 생각한다. 꿈이냐 현실이냐? 정신적인 행복이냐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냐? 정말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답이 정해져 있지않은 쉽지 않은 고민 혹은 의문이다. 권정생선생님의 생가를 보자 어떤 교수님이 말씀하신게 생각났다.   "돈은 가지는것이 아니라고, 그냥 스쳐지나가는것이다"

 




▲집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화장실

 

권정생 선생님의 생가에 가기전에 우리들에게 권정생선생님의 유언장을 복사한 종이를 나눠주셨다.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그리고 이 유언장은  2007년에 쓰신 유언장....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주십시오.
화장해서 해찬이와 함께 뒷 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 되었습니다.
지난 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모두한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놓은 글이 있으니 참조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 정 생

 

 

권정생 선생님의 뜻에 따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생겨났다. 유언장들을 보고 학생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




권정생 선생님은 1967년부터 16년간 마을에 있는 작은교회에서 종지기로 살았다고 한다. 권선생님의 작품중에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란 책이 있는데, 권정생이 조탑리 일직교회에서 종지기로 계시던 시절의 모습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교회에 가니 마을 어르신께서 권정생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다. 열심히 듣고 있는 학우분들..^^이로써 독서기행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가는길 모두들 정말 알차고 행복했던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출발하던때와 달리 꿀잠을 청하는 학생들.. 많이 피곤했나보다 생각했다. 후에 곧 무한도전을 보면서 깔깔 웃는 학생들...ㅎㅎ 생각했던것 보다 이번 독서기행은 더 뜻깊은 하루였다. 이글을 읽고 독서기행을 고민하시는 학우분들, 혼자가기 두려운 학우분들 바로 다음 독서기행에 신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아무리 묘사, 표현하려고 해도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100배 나으니까 말이다.

 

 

 

 

 

p.s 수고해주신 백이든,이원규 선생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울산대학교를 위해 노력하시는 교직원선생님들도 감사드려요~!!이건 제생각인데 다음번엔 조를 짜서 책내용에 대한 미션같은걸 하게하면 어떨까요? 혼자오신분들도 덜 뻘줌하시고.. 몰입과 집중을 더할수 있지않을까요? 물론 당근과 같은 동기부여도 필요하겠지만...ㅋㅋ 또, 하회마을에서 탈놀이 때문에 하회마을 안을 여유롭게 보지못한게 아쉽네요! 좋은프로그램 감사하고, 더더욱 발전하는 책읽는캠퍼스가 되길 도서관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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